지난 2008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국보 1호 서울 숭례문(남대문)이 한 주객에 의해 전소 되는 사건이 일어 났다. 갖은 전란도, 비바람도 버텨낸 문화재가 불과 한명의 실수에 의해 사라져 버린다. 만화에서도 나오기 힘들법한 이 일이 있은 이후 국내 문화 업계에서는 새로운 분야가 대두 된다. 기존의 아날로그 형태에서 디지털 형태로 문화재를 제작, 보관하는 방법이다.
가능한한 문화재가 사라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자료들을 모으고 저장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들은 혹시 모를 문제에 대비해 손실된 문화재를 복원키 위한 자료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분야가 활성화 된 이후 수 많은 연구원들이 다양한 문화재를 실측하고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3D그래픽 자료로 변경, 실측 모델링을 구현하는 등 최첨단을 달리는 디지털화 방식들이 연구된다.
카이스트의 박진호 연구원은 디지털문화재복원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문화재디지털복원전문가로 지난 2006년 앙코르와트 디지털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문화 유산 10여점을 디지털 세상에 옮겨 담았다.
특히 지난 5월부터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고 경주 엑스포 조직위, 인디고엔터테인먼트가 협업해 제작한 경주 엑스포 석굴암 HMD프로젝트의 감수를 맡았다.
앞서 지난 2008년 그가 석굴암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복원 사업을 진행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3D스캐닝 작업을 통해 실측을 진행했고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델링을 진행하는 등 기본 뼈대를 잡았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인디고엔터테인먼트는 시스템 상에서 석굴암을 실제로 방문하는 듯한 형태의 콘텐츠를 10분 분량으로 제작해냈다. 단순히 HMD를 쓰고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시스템상에서 걸어서 이동하는 장면이나 손을 이용해 직접 핵션을 취하는 것과 같은 보조 행동들을 만들어 냈다. 마치 석굴암에 직접 들어가서 현장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개발된 콘텐츠는 지난 21일 경주 엑스포 행사장 내부의 경주 타워 1층 전시관에 자리잡았다. 전면을 전시와 관련된 설명으로 언급하고 석굴암의 역사, 본존불상을 축소해 제작된 석상 등을 기본 전시 콘셉트로 잡았다. 전시의 백미는 HMD로 제작된 석굴암 탐험 영상이다.
22일 오후 12시 방문한 전시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10명이 넘는 이들이 HMD체험을 위해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HMD영상에 푹 빠진 듯 이리 저리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허공에 손을 휘젓기도 하고, 잠시 휘청하는 이들이 보이는가 하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영상을 체험하는 분위기다.
경기도 파주에서 온 김현우(28)씨는 "바닥에 발을 뗐다 붙이는 것으로 이동이 가능해 편하게 걸어다니면서 영상을 관람할 수 있었다"며 "화려한 영상미와 함께 석굴암이 주는 신비함을 확인할 수 있는 콘텐츠여서 신선했다"고 체험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석굴암에 얽힌 이야기들을 따라가는 형태로 제작된 점이 더 인상깊었다"며 "우리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또 문화재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콘텐츠로 의미있는 체험이었다"고 덧붙였다.
가상현실의 등장으로 문화재의 디지털 복원 역시 한단계 진화하는 듯 하다. 단순히 바라보는 형태의 문화재에서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하기 까지 하는 형태는 디지털상에서도 문화재가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것이 아닐까.
석굴암 HMD트래블 체험관은 오는 10월 18일까지 전시된다.